아아를 포기하게 만드는 날씨다. 모두 감기 조심하세용 💨
6학기, 대신 휴학
지금 생각해보면 난 9월에는 항상 매단 지 오래 된 현수막의 끈처럼 축 쳐져있었던 것 같다. 봄과 여름을 열심히 달리고 쉬어야 할 타이밍을 매번 놓쳐서 2학기는 항상 힘들게 보냈다. 올해가 되어 드디어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추욱 늘어져있는 상태를 넘어서, 예전에 뜨개질 하겠다고 사놓고 서랍에 아무렇게나 꽁박아놓은 털실같이 제대로 꼬여서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처음으로 휴학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14년을 안 쉬고 달려왔는데, 쉽게 휴학을 선택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모 지인과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다,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쉬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때는 지금뿐이라는 말을 듣고 휴학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남들보다 1년 일찍 학교에 들어와서, 고등학교 때부터 개발을 해왔으니 남들보다 빠른 속도가 나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조금만 만나봐도 이건 그다지 매력적인 강점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쉬면 쉬는 만큼 늦어진다고 생각해서 쉽게 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부에 100% 몰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마음이 조급해서 항상 불안해하면서 걱정만 하고 계획만 세우다 시간이 가버린다. 휴학신청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 이 조급함이 마음을 뒤덮었다. 너 쉬는 만큼 남들보다 뒤쳐지는 거야. 정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솔직히 후회 안 할 자신은 없었다. 근데 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성격이라면 불안해서라도 진탕 놀면서만 보낼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휴학하고 3주는 거의 놀았다. GDSC 일하고, 텝스하고 파이토치만 틈틈이 공부하고, 그거 말고는 그 때 뭐하고 살았는지 기억도 안난다. 근데 재미있었다. 4주가 지났을 때부터 슬슬 눈이 뜨이는 기분이 들었고, 지금은 나름 알차게 휴학 생활을 하고 있다. 텝스도 목표 점수 넘겼고, 머신러닝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고, 나를 존중해 주는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잊고 살았던 내 취미들도 다시 즐기고 있고, 요리도 한다(맛은 그냥 그렇다). 많이 고민하고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부담감도 내려놓고 내가 하고 싶고 나에게 필요한 공부를 선택해서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집에서 인형 껴안고 코딩하다가 질리면 카페가서 하기도 하고, 카페에서 집에 가는 길에 마카롱 가게가 보이면 몇 개 사서 까먹고, 시험기간이라 모각공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림도 그리고, 블로그 글도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자기 전에는 노래 들으면서 일기 쓰고, 그러고 산다. 나에게 이런 게 필요했구나, 치료받는 기분을 즐기며 지낸다.
인생은 기니까. 잠깐 반짝하고 끝날 인생 아니니까, 쉴 줄도 알아야 하는 거다!
텝스 응시와 목표 점수 달성
10월 2일 314회차 텝스를 쳤다. 첫 진단고사에서 220점을 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371점을 받았다. 자세한 후기는 위 글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머신러닝 공부
데이터사이언스개론과 데이터마이닝및분석 수업을 들은 경험이 있으니 머신러닝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내 배경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논문 스터디 때도 수학을 안한 지 오래되어 수식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었고, 내가 수업에서 배운 건 정말 기본적인 수준이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기술을 익히고 응용해서 뭔가를 만들기보다는 기초체력을 탄탄히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집중적으로 공부할 건 선형대수와 파이토치로 정해두고, Pandas나 다른 데이터 다루는 라이브러리는 틈틈이 공부하기로 계획했다.
(1) Coursera에서 Mathematics for Machine Learning: Linear Algebra 수료
지금 알았는데 코세라 학생용 플랜은 연간 하나의 강좌만 무료로 들을 수 있던 것이었다. 이런건줄 알았으면 코세라에서 NLP 강의를 듣는 건데 ㅎ.ㅎ..
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제공하는 강의다. 강의는 모두 영어로 진행되고, 자막을 제공해준다. 한국어 자막은 제공되지 않지만 스크립트가 제공되기 때문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파파고의 힘을 빌려 해석할 수 있다. 강의영상 중간중간에 내가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하는 깜짝 퀴즈가 나온다. 영상 중간에 나오는 퀴즈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며, 교수님이 문제를 풀어주시기 전에 미리 내가 그 문제를 풀어보는 식이다. 코세라의 가장 좋은 부분은 일주일 학습량을 정해주고, 캘린더 알림을 통해 꾸준히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거다. 그리고 각 챕터마다 강의와 과제(연습문제 풀기 혹은 프로그래밍 과제)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해준다. 연습문제는 의외로 까다롭다. 프로그래밍 과제는 Python을 사용하며, 배운 내용을 코드로 구현하는 실습을 한다.
누군가 이 강의를 추천하냐 물으면, 코세라 연간 플랜을 끊어놓지 않은 이상 이 강의 말고 다른 강의를 들으라고 해주고 싶다. 도움이 많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난 동기부여가 중요한 사람이라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않은 분께는 괜찮을지도..) 강의 토론장에 이 강의에 대한 불평의 글이 몇몇 보였던 걸 보면 막 강력추천하고 싶은 강의는 아니다. 선형대수 지식이 필요하면 그냥 학교 수업을 듣자. 코세라에는 이것 말고도 들을 수 있는 퀄리티 높은 강의가 많다... 그리고 링크드인에 선형대수 수료증 거는 것보다 텐서플로우나 NLP 코스 수료증 거는 게 멋지니까 .,,
(2) 김성훈 교수님의 PyTorch Zero To All 완강
파이토치로 머신러닝의 주요 개념과 모델을 구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영어로 진행되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고, 설명을 들어야 하는 부분과 직접 따라치면서 배우는 부분을 명확하게 나눠주셔서 학습하기 편하다. 그리고 매 챕터가 끝날때마다 주시는 실습문제가 굉장히 좋다. 파이토치 사용법은 확실하게 익힐 수 있다.
(3) kaggle Pandas 코스 완료
에.. 그렇다.. kaggle 코스들은 깔끔해서 좋은 것이다..
백신 1, 2차 접종 완료
원래 9월 25일에 화이자 1차를 맞으려고 했는데, 간식 먹다가 모더나 잔여백신을 잡아버려서 그대로 14일에 모더나 1차를 맞게 되었다. 1차 주사는 맞은 지도 모를 정도로 안아프게 놓아주셨다. 맞은 뒤 3시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저녁 먹은 뒤부터 머리가 아프고 슬슬 추워졌다. 열이 많이 났는데, 그날따라 약도 안먹혀서 결국 밤을 샜다. 한 5일 정도 지나니까 괜찮아졌다.
모더나는 1차 맞은 뒤 6주 뒤에 자동으로 2차 예약이 되는데, 4주 뒤로 접종을 당겨서 맞았다. 2차 접종 주사는 1차 주사보다 많이 아팠고, 후유증은 1차보다 짧고 굵게 왔다. 열이 39도까지 올라서 하루에 타이레놀 하루 최대 복용량까지 먹고, 이렇게 3일을 보내니 괜찮아졌다.
백신 부작용으로 위장이 늘어났는지(?) 식욕이 폭발했다. 원래 입이 짧아서 많이 먹지 못하는데 백신 맞고 몸 괜찮아지자마자 한끼에 에피타이저로 설빙 먹고 피자 반판에 초밥까지 먹었다. 요즘은 컨디션 좋으면 라면에 밥 말아먹고 후식으로 마카롱까지 먹을 수 있다. 좋은 인생이다 😋
사소한 것들
여기서부터는 자잘하고 별 거 없는 얘기들이라 별로 궁금하지 않은 분들은 창을 닫으셔도 된다.
10월 19일에 GDSC global Networking event가 있었다. 전세계에 있는 GDSC Lead들이 모이는 자리다. 원래 GDSC 내부에서 사용하는 Bevy라는 플랫폼이 있는데, 항상 Google Meet이랑 Gather만 사용해서 이번 이벤트에서 처음으로 Bevy를 사용했다. Agenda/Stage/Networking 페이지가 따로 나눠져 있어서 세션별로 페이지를 이동하며 진행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Networking table에는 Flutter, AI/ML, Android, GCP 등등 각자 관심있는 구글 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와, 어딜 가야 할 지 모르겠는 방황하는 리드들을 위한 Cat lovers, Doggy lovers 테이블과 생일별 테이블도 만들어져 있었다(1월이 생일인 사람, 2월이 생일인 사람, ...). 나는 1월이 생일인 사람 테이블에 들어갔다. 나 포함 3명이 있었는데, 거기 계셨던 모 외국 리드님께서 1월이 생일인 니들은 정말 행운아라며 잔뜩 좋은 말씀 해주시고 떠났다. 그래서 2명만 남게 되었는데 그냥 서로 머쓱하게 있다가 바이~ 하고 나왔다. 그러다 들어간 곳이 AI/ML 테이블이었는데, 인도에서 리드로 계시는 분이 처음 AI를 접하는 사람이 어떻게 커리어를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이분께 많은 걸 배워서 여기다가 적고 싶은데, 적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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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하고 나서 전공책과 개발 관련 책은 많이 읽었지만, 소설책은 과제로 읽어야 했던 것들 말고는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치과 진료 받으러 갈 겸 텝스 단어장을 사려고 서점에 갔는데, 어렸을 때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위저드 베이커리의 작가이신 구병모 작가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은 '아가미'였는데, 이 책을 보니 옛날에 친구한테 구병모 작가의 '파과'를 추천받았던 게 생각이 나서, 단어장과 함께 파과를 샀다.
이 책의 마지막 두 문장을 좋아한다. 그리고 조각에게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불꽃처럼 화려하게 빛나지는 못하겠지만 촛불처럼 은은하고 오래 빛나다 사그라졌으면 좋겠다. 손톱에 불꽃을 새긴 것도 조각이 그렇게 살지 못할 거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회고가 많이 길어졌다. 회고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것 같다. 다 쓰고 읽어보니까 이게 대체 무슨 글인가 싶다......
어쨌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월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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